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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GC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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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태

2020.04.26 21:22

 

셀모임을 위한 설교요약 나눔

5:13-16 “선한 영향력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서론)

사도행전 24:5 제사장과 장로들이 사도바울을 이렇게 고소합니다. 24:5 “우리가 보니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개역성경은 사람은 염병이라 합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전염력이 강하다는 겁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 복음 전하고, 많은 교회를 개척하면서 결과적으로 몇십년 만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새로운 종교로 등장했고 로마사회에 엄청난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어떻게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있을까요?

 

1)       소금이 되라.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이 되라는 것은 필요하고 귀한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소금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소금은 단순한 염분이 아니라 '생명물질'입니다.  양수가 소금물이 아니라면 아기는 자랄 없습니다. 소금으로 위액이 염산이 되어 살균작용이나 소화작용을 도와주며 세포 속의 노폐물을 청소해주고 신진대사를 촉진합니다. 심장암이 없는 이유는 염통 소금통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소금은 99% 염화나트륨인 정제염이 아니고 바다에서 나오는 천일염이나 돌에서 나오는 암염인데 이런 소금은 염분만 있는게 아니라 각종 미네랄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어 건강에 좋습니다. 로마시대에는 공무원의 월급을 소금으로 지급했습니다. 소금이 라틴어로 sal인데 Salt 원어이며 봉급을 salary라고 하는 겁니다. 그만큼 소금이 중요하고 귀했다는 겁니다.  

 

산상수훈의 컨텍스트 안에서 소금이 된다는 것은 의로운 사람,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노아 홍수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라 한사람을 통해 세상이 구원을 받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10명의 의인이 없어서 멸망했습니다. 그러니까 소금은 양이 아니라 맛이 중요한 겁니다.” 바닷물은 염분이 3%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결코 썩지 않습니다. 한국기독교 초기에는 인구비율 3%밖에 되지 않았지만, 숫자로 3.1운동을 주도했고, 한국의 근대화를 이루었고, 자유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교두보의 역할을 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맛을 잃었다는 것은  의롭게 살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욕심 많고 불의하며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라면 이런 사람들이 맛을 잃은 소금이요,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의 영향력은 마이너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도 반드시 맛이 있는 사람,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의롭고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2)       빛이 되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의 빛이 되라는 것은 소금이 되라는 것과 흡사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차이가 있다면 소금은 내재성을 강조하며 빛은 가시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내면적인 것이고 빛은 행위적인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 내면의 착함과 의로운 세계가 겉으로 행동으로 드러나 보여지게 하라는 겁니다.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세상 전체를 비치는 빛은 예수님입니다. He is the Light of the world. 우리는 세상 사람 전체에게 빛을 비추고 영향력을 끼칠 수는 없어요. 우리는 a light입니다. 등불처럼 여러분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을 비치는 빛이 되라는 겁니다. “등불을 켜서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나니…” 말이란 부피의 크기인데 한말은 대충 18리터쯤 됩니다. 그런데 원문에 나오는 단어는 modios 9리터, 말쯤되는 바구니나 항아리를 말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안에 (통안에, 항아리 안에) 두지 않고 높은 등잔 위에 두라는 것은 역시  가시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신자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평가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아야 말의 권세가 생기고 영향력을 끼칠 있는 겁니다.

 

걸음 나아가 신자들의 가시성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그냥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등불을 켜서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모든 문장들은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표현들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빛이 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착한 일을 사회에서 많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칭찬과 명성이 높아져야 영향력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은 위선이 아닙니다. 행위는 착한데 마음이 악하면 위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금되어 착하고 의롭고 정직한 성품을 착한 행실로 보여준다면 결코 위선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행실을 가시화시키는 이유를 보십시오. “그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선한행실을 가시화시키는 목적은 나의 의와 공로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한국개신교는 지난 130년의 역사 속에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왔습니다. 한국의 근대화, 여성해방운동과 악한 풍습을 꾾고 거룩한 민족이 되는데 기여를 했습니다. 한국의 해방운동에 앞장서고,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것도 역시 기독교의 영향이고, 70년대 새마을 운동도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겁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사회사업과 자선사업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은 교회이며 사회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포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근래에 많은 비판을 받았을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소금맛을 잃어버렸습니다. 지나친 배금주의와 물질주의 세속주에 물들어 초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회개하고 소금맛을 다시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실수한 다른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publicity 홍보와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겁니다.

반기독교적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교회를 비방할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겁니다. 우리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빛이 되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것을 알아아 합니다 . 의도적으로 친절을 베풀고 의도적으로 선한 일을 해서 하나님을 홍보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입니다.

 

나눔1: 소금과 빛이 되라는 것의 공통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요? 또한 차이는 무엇인가요?

나눔2: 소금 맛이 있는 신자는 무엇이며 맛을 잃은 소금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눔3: 빛의 가시성에서 우리의 선한 행실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나눔4: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여러분이 개선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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