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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GC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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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태

2021.04.08 09:07

 

고전6:12-13 “치명적 (3) – 탐식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서론)

모든 종교에는 음식규례가 있습니다.

유대교는 동물을 도살하는 과정부터 음식을 준비하는 방법까지 워낙 까다로워 이방인과의 식탁교제가 불가능합니다.

이슬람도 할랄 음식이 아니면 먹지를 않고 돼지고기를 절대로 입에 대지 않고 힌두교는 소를 신성화해서 소고기 먹는 것을 죄로 다룹니다.

불교는 살생을 금하기에 아예 채식만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만 음식규례가 없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유대종교의 음식규례에서 완전한 벗어나 뭐든지 먹을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로부터 자유, 율법으로부터 자유, 종교로부터 자유를 얻은 겁니다.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유가 지나치면 죄가 되고 해악을 끼치게 된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경계합니다.

예로, 성욕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바운더리를 지나치면 죄가 되고 문제를 가져옵니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은 극히 정상이며 물건을 소유하는 즐거움이 있지만 분수를 넘으면 물욕이 되고 시기와 질투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는 것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안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들을 마음껏 먹으라고 허락하셨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좋은 입맛을 주셔서 하루에도 몇번씩 음식을 즐기는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먹는 즐거움은 인간의 가장 기쁨이며 인간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욕이 탐욕이 되는 순간 죄가 되고 문제가 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온 시험은 식욕에 대한 충동이었습니다.

하와가 마귀의 시험을 받고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

하와는 선악과의 열매를 먹고 함께 있던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식욕에 대한 충동이 얼마나 컸던지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은 겁니다.

 

창세가 25장에  에서가 들에서 일하다가 돌아왔는데 허기가 지고 심히 피곤합니다.

그래서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그릇에 팔아 넘깁니다.

12:16-17 에서의 행동에 뭐라고 합니까?

음행하는 자와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자신의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영적인 것들을 소홀히 여겨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린 전형적 케이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갔는데 광야는 물이 없고 간조한 곳입니다.

당장 문제가 생긴 것이 먹고 마시는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하셔서 매일 아침만나 만나를 얻게 하셨고 굶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들이 다시 음식에 탐욕을 품어요.

민수기 11장에 그들이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음식에 대한 탐욕을 이기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우리가 신약을 들어와 음식규례에서는 자유함을 얻었으나 여전히 탐욕을 절제해야 하는 원리는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세요. 언제 식욕이 탐욕이 되고 죄가 되나요?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는 바운더리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고 여러분들이 말하는데 그렇다고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고 말하는데 그렇지만 무엇에든지 얽매이면 안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크리스천의 자유의 바운더리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첫째, 유익한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고 음식을 즐기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음식을 먹는 것이 유익이 되지 않으면 절제해야 하는 겁니다.

 

우선 너무 많이 먹는 과식을 절제해야 합니다.

한국은 먹방프로그램이 있어요.

여성은 20 중반인데 평범한 체구인데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라면 21개를 맛있게 먹어 치웁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인데 과식, 과음은 결코 건강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무게가 정상인지 계산하는 BMI 방식이 있어요.

BMI 25까지 정상이고, 25-30 overweight이고, 30 넘으면 비만입니다.

예로 키가 170 사람은 72킬로까지 정상, 72킬로 이상은 overweight, 그리고 87킬로 이상은 비만입니다.

미국사람 경우 전체성인의 40% 비만에 시달리고 19 미만은 18.5% 비만입니다.

과식은 결국 비만과 고혈압, 당뇨병, 통풍, 동맥경화와 같은 죽음에 이르는 성인병을 불러옵니다.

그런 차원에서 탐식은 건강과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 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오래살기 위해서는 식탁을 즐기되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두번째 먹어대는 걸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음식을 먹을 음식에 대한 욕심과 집착으로 맹렬하게 먹는 겁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부페를 했습니다.

보니까 사람은 많은데 음식이 부족한 같습니다.

그러면 앞에 사람들은 사람들을 배려해서 적당히 음식을 가져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뻬앗길까봐 먹으려는 욕심으로 산더미처럼 가져갑니다.

새우튀김이 50개정도인데 사람이 80명은 되는 같아요.

그러면 최대 하나만 가져가야 하는데 3, 4, 5개를 가져갑니다.

차라기 남기더라도 접시에 올려 놓겠다는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식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 겁니다.

보는 사람들에게 덕을 끼쳐야 하는데 오히려 마음에 시험을 가져옵니다.  

 

셋째, 맛을 찾는 미식과 비싼 음식만 찾는 호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 먹는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음식이 풍부한 사회에서는 생존보다 멋과 맛과 취향과 분위기를 따집니다.

물론 좋은 음식을 맛보고 즐기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과도하면 덕이 되지 않습니다.

음식을 통해 자신의 격을 찾는 사람은 허영의 덫에 걸릴 있습니다.

미식가가 자신의 직업이라면 직업상 그럴수 있지만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입맛이 까다로운 것이 은혜가 되지 않아요.

우선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덕이 되지 않아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어떤 음식이 상에 올라오든지 감사함으로 받는 겁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음식을 준비한 어머니께 아내이게 남편에게 감사하는 겁니다.

 

비싸고 최고급 음식을 찾는 사람들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가끔 비싼 식당에 가서 비싼 음식을 먹는 것도 인생을 즐기는 즐거움에 들어갑니다.

결코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운더리를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세계 3 진미로 꼽히는 프랑스 고급 요리, 푸아그라가 있는데 거위의 살찐 간을 만든 음식입니다.

문제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동물학대의 대명사입니다.

거위는 몸을 움직일 없는 비좁은 철창에 갇혀 있고 부리에 튜브를 꽂아 강제로 사료를 먹게 합니다.

하루에 3~4 정도 반복하면 일반적인 거위의 보다5~10 정도 간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거위들은 강제사료를 당하면서 고통속에 눈물을 흘리며 목과 내장이 심각하게 손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수백만 마리의 거위가 사육되고 있어요.

상업을 위해 비인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만드는 비싼 음식을 먹어야 이유는 없습니다.

21세기는 인간이 동물과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인간적인 음식문화는 생태계의 흐름을 깨는 사회적 죄악에 들어가는 겁니다.

 

두번째 물어야 하는 것은 내가 음식에 얽매어 있는가 하는 겁니다.

12절에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로 말하지만 나는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얽매이는 것은 유익하지 않은 것보다도 심각합니다.

음식에 얽매었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먹고 사시는 것인데 술중독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일반적으로 음식중독은 건강한 음식이 아니라 몸이 나쁜 것들입니다.

커피에 중독되고, 피짜에 중독되고, 특정 음료수에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술중독은 말하지만 음식중독은 말하지 않습니다.

술은 조금만 마셔도 죄악시 하지만 음식중독은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의학계에서는 음식중독을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처럼 질병으로 취급합니다.

음식중독이란 포만감을 느끼고 음식을 계속 섭취하거나, 포만감을 느껴도 끊임없이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증상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6:7 “사람의 수고는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식욕은 채울 없느니라.

 

음식중독을 자가 테스트하는 방법이  있어요.

첫째,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먹어야 욕구를 해소할 있다

둘째, 갈수록 많은 양을 섭취해야 예전의 즐거움을 느낄 있다.

셋째, 음식을 먹으면 무력감, 짜증, 우울감과 같은 기분을 느낌는 겁니다.

질문에 하나라도 네라고 대답하면 음식중독입니다.

 

흔히들 식탐을 의지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음식중독은 알콜중독처럼 이미 뇌가 중독에 빠져 스스로의 의지나 자제력으로는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내가 뭐든지 원하면 끊을 있는 자유가 있어야 진짜자유가 됩니다.

그러나 음식에 얽혀있는 것은 자유를 잃어버린 종의 모습입니다.

 

탐식과 음식중독이 죄라면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식탐을 죄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노력과 다이어트만으로 해결할려고 하는데 해결이 안됩니다.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나를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중독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셋째, 언제 탐식이 치명적인 죄가 되는가?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에서, 음식에 대한 욕구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했어요.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복이며 선물입니다.

나아가 여러가지 식탐의 행위들 과식, 탐식, 미식, 호식은 죄가 되지만 대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식탐이 언제 영혼을 죽이는 치명적인 대죄가 될까요?

아퀴나스는 이런 식탐 추구가 지나쳐서 인생의 '최후 목적' 된다면 이는 대죄라고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는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태어났다"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탐식이나 미식을 인생의 '최고 목표' 삼습니다.

그리고 식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구원보다 중요하고, 그것이 신앙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대죄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13절을 보세요.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폐하시리라.”

음식은 배를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해 있다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먹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겁니다.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라고 합니다.

자신의 배가 하나님의 자리에 있어서 자신의 두둑한 배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결론)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얼마든지 우리가 누리고 즐길 있습니다.

하루 3끼를 먹으며 할렐루야 감사하며 받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음식은 인생의 수단이지 목적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찾아오는 음식에 대한 탐욕을 절제해야 몸도 건강하고 마음과 영혼도 건강한 겁니다.

 

 

나눔1: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 나누어 봅시다.

나눔2:  기독교에는 음식규례가 없는데 바운더리는 있습니다. 첫째, 유익한가입니다. 유익하지 않은 음식습관에 대해 나누어봅시다. (과식, 미식, 호식, 걸식 )

나눔3: 특정한 음식중독이 경우를 생각해 보고 어떻게 이런 중독에서 벗어날 있나요?

나눔4: 어떻게 하면 음식을 즐기면서 음식의 종이 되지 않을 있는지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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