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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GC 주일예배

Comment '1'

주권태

2021.04.08 09:45

 

12:15-21 치명적 죄(4) 탐심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일반 심리학에서 탐심, 욕심이란 필요 이상으로 얻고자 하는 과도한 소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Matthew Henry 탐심을 비정상적인 소원과 욕구라고 정의했습니다.

중요한 단어는 과도한, 비정상적인 소원과 욕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정상적인 소원과 욕구가 있습니다.

먹고 싶고 마시고 싶고 갖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잘살고 싶은 것은 극히 정상적입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획하고, 기도하고,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사는 것은 죄가 아니라 미덕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욕구가 선을 넘어 남을 것을 탐낸다던가 분수에 지나치면 탐욕과 탐심입니다.

 

오늘 본문은 특히 물질에 대한 탐심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15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여기서 생명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생명입니다.

소유가 많다고 그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거나 연장시키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이 비유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고합니다.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 비유를 현대인의 관점으로 들여다 볼 때 이 사람이 뭘 그렇게 잘못했고 뭐가 그렇게 어리석은가요?

이 사람은 오히려 지혜롭고 책임감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는 농업에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계속 풍년을 맞아 소출이 풍성해져서 창고가 부족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지혜롭게 계획을 합니다.

오래된 창고를 허물고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자.

물건을 좋은 가격에 팔아 이윤을 창출하고 미래를 위해 충분히 모아두자.

그러면 노년에 우리부부가 여행도 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겠다.

이런 계획을 하면서 꿈이 부풀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그렇게 잘못되었나요? 다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요?

아니 원래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이 농부는 재정의 원리를 아주 잘 꽤뚫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모으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자본을 늘리는 것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만이 하는 겁니다.

 

그렇게 젊어서 차곡차곡 자본을 모으면노년에 이르러 그의 노동의 열매를 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좀 편안하게 살고, 여행도 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했는데 이제 쉬면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죄가 되나요?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탐욕적인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난하시나요?

이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재정을 계획하고 부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편안하게 살 생각을 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부를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해 부요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21절에 말씀합니다.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첫째, 이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그의 삶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16절부터 19절까지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1인칭 내가라는 단어가 몇번 나오는가 세어보세요.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내가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인칭 대명사가 6번 나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어를 보시면 1인칭 주격과 소유격이 11번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분명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어려서부터 안식일이면 공회당에 다니고 예배를 드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불신자처럼 살아가고 있어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재정에 하나님이 전혀 계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노력합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없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아요.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면 물질로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도나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그를 위해 일한 농부들에 대한 감사도 없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물질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단지 그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나, , , 그리고 나와 내 가족 그것이 전부인 겁니다.

자신만을 위해 일하고 부를 쌓아가는 것을 욕심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죄의 근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나를 위해 쌓아가는 부는 탐욕이요 죄가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우리의 영적인 생활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 분이 가정의 주인이 되시고 재정의 주인이 되도록 모셔야 하는 겁니다

 

두번째 이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부자가 되어서가 아니고 노년의 때를 준비해서도 아닙니다.

이 사람이 내가 늙어서 먹고 마시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욕심이 아니고 얼마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분복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고, 다가오는 그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지 않은 겁니다.

 

성경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많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을 부리다가 잘못하면 자신의 신앙을 잃고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겁니다.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골로새서 3:5에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하는 겁니다.

 

2000년 전에도 물질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더욱 물질에 대한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욕심을 미덕이라고 합니다.

Rebecca Blank는 말하길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사이에 욕심은 좋은 것이다. 욕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만들며 생산성을 높이며 경제가 자라도록 한다.

 

공산주의 창시자인 Karl Marx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렇게 평가했어요.

모든 자본주의자들의 심령을 지배하는 열정은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과 소원이다.

열심히 일하고 모으고, 욕심내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제대로 보았어요. 인간의 욕심이 없이는 이런 엄청난 자본주의 경제체재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창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만든 공산주의는 더욱 악한 경제체제입니다.

이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 속에 있는 욕심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기업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경쟁하여 더 많은 부를 축적하지 않으면 도퇴합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자극하여 나에게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만들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서 구매력을 높여야 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자본주의는 유지되는 겁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내가 원하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죽도록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욕심이란 밑빠진 구덩이와 같다라고 표현했어요.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으로 진이 빠지게 한다.

 

미국지폐나 주화를 보시면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쓰여져 있어요.

이것은 미국이 한참 기독교 신앙이 좋았을 때 돈에 이 문구를 새기자는 운동이 있었던 겁니다.

1864년에 의회에서 In God we trust로 쓰기로 결정하게 되어 지금까지 쓰고 있어요.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미국돈에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은 Irony입니다.

정말 미국은 하나님의 의지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돈을 의지하는 사회인가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맘모니즘 사회가 아닌가요?

Almighty God이 아니라 Almighty dollar를 자랑하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미래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자신이 모아둔 곡식과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캐런티는 없는 겁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장래일을 알수 없기에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한 이 어리석은 부자는 그날 밤에 돌연사를 당해 죽게 됩니다.

20절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우리는 영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하고 늘 하나님을 최고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먼저 영적으로 부요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환난의 때를 미리 준비하는 깨어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설사 하나님이 나의 생명을 오늘 취하신다 해도 놀라지 않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결론)

사람이 욕심이 지나치면 불행해집니다.

구두쇠라는 단어가 영어로 miser라고 합니다.

불행이란 단어는 miser y만 붙이면 Misery 불행이 됩니다.

돈에 욕심을 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믿음을 잃고 구원을 잃을 수 있는 치명적인 죄가 탐욕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부요해지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물질에도 부자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고 사람에게 베풀면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나눔1: 여러분에게 한가지 가장 큰 소원과 욕구가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나눔2: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부자처럼 보이는데 왜 어리석은 부자라고 하나요?

나눔3: 물질에 대한 탐욕이 우상숭배다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나눔4: 어떻게 하면 물질의 유혹을 이기면서 부를 축적하고 누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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