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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GC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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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태

2020.12.04 17:44

8:18-25 내일의 영광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오늘은 대강절 첫주일입니다. 대강절은 대림절 또는 강림절이라고도 합니다. 대강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번째 현현하심을 기념하면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4주 주일 전부터 시작하여 매주마다 초를 하나씩 켭니다. 첫째 주는 소망의 촛불, 둘째 주는 평화의 촛불, 셋째 주는 사랑의 촛불, 그리고 넷째 주는 기쁨의 촛불을 켭니다. 마지막 크리스마스에는 다섯번째 촛불을 키는데 이것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오늘은 첫번째 소망의 불을 키면서 내일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사도바울은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을 비교하면서 아무리 현재의 고난이 크다 할지라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물론 성경은 현재의 고난을 축소하거나 미화하거나 가볍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탄식이란 단어가 두번이나 나오고 있는데 이 단어는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속에 신음하는 단어입니다. 그만큼 인생에서 당하는 고난이 크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고통과 늘 함께 해 왔습니다. 먼저 인간에게는 태어나는 고통이 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이 모든 동물들은 새끼를 쉽게 낳고 막 태어난 동물은 바로 네 발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인간은 애기를 낳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1년을 키워야 간신히 걷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고 척추주사를 맞을 수 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입니까? 현재 의학이 발달하지 전까지만 해도 대략 7%의 산모가 아기를 낳다 죽었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많은 장례를 치뤄면서 보는데 태어나는 것도 힘들지만 죽는 것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천국을 들어가는 관문이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지만 죽음과 죽는 과정은 다른 겁니다. 예수님께도 죽음은 전혀 두렵지 않았지만 십자가에서 죽는 과정은 하나님 아들에게도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고통이 가져오는 정신적 육신적 고통이 너무나도 컸기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고나 살인, 십자가 고통으로 죽지 않고 병이나 노환으로 곱게 죽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힘든 과정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참으로 힘들게 만듭니다.

 

질병도 온 인류가 당하고 있는 고통입니다. 현재 온 인류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함께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가고 있어요. 바아러스 백신이 1년도 되기 전에 이렇게 빨리 나오는 것은 역사적 기록입니다. 벌써 세 제약회사에서 백신을 발명해서 내년 초면 예방이 시작될 겁니다. 그러나 백신이 나와도 한참동안 코로나로 인한 충격과 변화는 계속될 겁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여 병의 근원을 알고 백신을 빨리 개발할 수 있어서 다행이자만 과거에는 한번 전염병이 돌면 지옥을 연상할 정도로 무서웠다고 합니다. 전염병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서 마치 애굽의 장자가 죽는 재앙이 임했을 때에 온 땅에 애곡소리가 그치지 않은 것처럼 무서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흑사병이라고 하는 페스트가 심하게 돈 14세기 유럽은 인구 1/3이 전염병으로 죽었고 인구를 회복하는데 유럽은 수백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합니다. 1346년 평균수명이 25세였던 영국인들은 30년이 지난 1376년에 평균수명이 17세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평균수명이 25세에서 17세로 내려갔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 지금은 평균수명이 80세인데 그당시 평균수명이 이렇게 낮은 것은 영아사망율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한번 질병에 걸리면 많이 죽었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집 앞에 숯이나 고추를 달아놓아 알렸습니다. 이 집에는 산모가 있으니까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몸이 약한 아이들은 출생신고를 늦게 했습니다. 그만큼 과거에는 병과 죽음이 인류에게 아주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코로나는 백신이 발명되었지만 백신이 없는 병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지카 바이러스, 에볼라, 사스, 메르스 바이러스 등은 백신을 만들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코로나는 백신을 만들면 큰 돈을 벌지만 다른 바이러스는 투자할만큼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치사율이 훨씬 높아도 환자를 치료만 하고 죽으면 어쩔수 없이 죽게 하는 겁니다.

 

육신적인 질병과 고통 외에 심각한 것은 정신적 고통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가장 많은 것이 우울증(Depression)과 불안장애(anxiety disorder)입니다. 그 외에도 공황장애(panic disorder), 정신분열증(schizophrenia), 조울증(bi-polar disorder), 강박장애 (OC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파라노이드, 의처증 의부증 등 그 외에 이름도 모르는 정신적 질병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겹쳐서 파도같이 밀려옵니다.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관계가 삐꺽 거리고 가정폭력이 엄청나게 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안하고 소외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이나 마약을 복용합니다. 가뜩이나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병에 걸릴까봐 두려워하는 공황장애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무서워 울고 서러워 울고 속상해서 울고 자살충동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상의 언급한 것들은 오늘 본문이 말하는 현재의 실존적이며 심각한 고통의 일부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현재의 고통이란 지금까지 언급한 것 외에도 가난의 고통, 전쟁의 고통, 관계의 고통, 그리고 생태계의 고통을 포함한 모든 고통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겁니다.

 

고통속에 있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일의 소망이란 것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밥을 먹고 살지만 영혼은 희망을 먹고 삽니다. 희망은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 비치는 한가닥의 빛줄기입니다. 저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질책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 할까요? 얼마나 미래가 캄캄하고 절망했으면 죽음으로 고통을 마치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주변의 가족들은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얼마나 더 힘이 들까요? 단테가 쓴 신곡 Divine Comedy은 자신이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직접 다녀온 것처럼 풍자한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지옥 입구에 이런 글이 쓰여졌다고 합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리라. 지옥이란 들어가는 문은 있고 나가는 문은 없는 곳입니다. 영원한 캄캄함과 절망 후에 더 큰 절망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희망의 빛은 아예 없고 캄캄한 절망만이 가득하다면 그것이 지옥이고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충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이 고통이라면 고통을 버티고 이길 수 있는 어떤 확실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망의 대상이 더 중요합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뭘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믿을 만한 것을 믿어야 하는게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을 믿으면 큰 낭패를 당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왜 실망하고 상처를 받나요? 기대하고 바랐던 것이 무산될 경우 실망하게 되고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경우 크게 상처를 받습니다. 희망이 크면 실망은 더 크고 신뢰가 클수록 상처는 더 깊은 겁니다. 그러므로 실망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려면 기대감을 줄이고 사람들을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그냥 믿어주는 대상이지 나의 믿음의 대상, 신뢰의 대상, 소망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 되시고 나의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겁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실망하고 시험드는 이유는 소망의 대상을 잘 못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복받기를 철썩같이 믿고 기대한다는 것은 위험한 믿음입니다. 물론 저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3박자의 축복을 믿습니다. 20세가 독일의 경제학자며 사회학자인 Max Weber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에서 개신교의 직업윤리, 곧 근면하고 정직하게 일하며, 서로 신뢰하고 믿어주는 정신, 그리고 낭비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정신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충실하고 신실하며, 정직하고 근면되이 살아가는 것이며, 세상적 쾌락을 따르지 않으며,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지 않으며, 알뜰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충만하여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살면 당연히 삼박자의 축복이 넘치게 되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더 나아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믿음을 주셔서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삶을 행복하게 살게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축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해도 예외는 있는 겁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할 수 있고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고 가정이 깨질수도 있는 겁니다.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로 인해 정신적으로 병에 걸려 고통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보고 생명의 위협을 당할 수 있는 겁니다. 지난 주에는 마니투린 섬에서 일하던 OPP가 전화를 받고 출동했다가 총에 맞고 순직을 했습니다. 아이들 네명의 좋은 남편이며 좋은 아빠로 그리고 지역주민 들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Doug Ford주수상도 참석을 했습니다. 아내는 조사에서 여러번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격려와 기도에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않고 오직 감사만 한다고 전했습니다. OPP로 봉직한지 32년차, 52세에 은퇴를 눈 앞에 두고 있다가 이런 죽음을 당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롬5:3-5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실망하지 않는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소망, 보장된 소망이 있습니다.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을 약속하시고 확증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우리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는 하나님 자신이 소망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영원히 사랑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그는 신실하셔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철썩같이 믿고 철썩같이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보장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천국과 그 곳에서 받을 영원한 기업입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꽃과 같이 떨어지고 풀과 같이 시드는 겁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받는 영광과 상급은 영원한 것이고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망이 있기에  천국의 더 큰 상급을 받기 위해 세상의 영광과 상급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난이 닥쳐도 넉넉하게 이길 힘이 있습나다.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장차 다가올 영광은 종말론적 소망입니다. 대강절인란 기다릴 , 내려올 입니다. 주님이 다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것을 기대하는 겁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신 초림을 기념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대강절을 지냅니다. 주님은 정말로 다시 오십니다. 그 분이 오시면 온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여 죄와 사망권세가 사라지고,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 공의와 사랑의 나라가 임할 겁니다. 더 이상 병도 고통도 없는 낙원을 창설하실 때 바로 주님께 붙어있는 사람들에게 주실 영광이 있는데 이 영광이 바로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진통하는 여인은 아이를 낳고 모든 고통이 잊게 됩니다. 둘째 셋쩨 아이를 낳는 이유는 아무리 고통이 커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이 있기에 현재 당하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천국에 올라간 믿음의 선조들이 현재 고통당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응원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너희에게 다가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나눔1: 인간이 당하는 실존적인 고통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나눔2: 고통 중에 어떤 고통이 가장 인간에게 힘들게 다가옵니까?

나눔3: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일의 희망이라고 합니다. 절대절망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나누어 봅시다.

나눔4: 믿음과 소망의 대상을 잘못 가질 때 생기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나눔5: 신자들이 가져야 하는 확실한 소망과 보장된 소망은 무엇입니까?

 

나눔6: 우리는 어떻게 고통과 환난이 넘칠 때에도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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